내가 사랑한 부탄

                                           -서양화가 나 현 숙-

  말로만 듣던 국민행복지수 1위(97%가 자신의 삶에 만족)인 히말라야의 은둔의 왕국에 발을 딛게 되었다. 어떤 인연으로 부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청년가이드와 연결되어 유창한 한국어 설명으로 뜻깊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탄지도, 동그라미 친 도시가 여행지

 

1. 부탄이란 나라는?

 부탄왕국은 한반도 면적의 약 1/5 크기에 인구 76만으로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영국이 인도-부탄 지역을 통치하다가 1947년 인도가 독립 후 영국 정부가 가지고 있던 부탄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승계해 1949년 인도-부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였고, 부탄은 같은 해 인도로부터 독립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6천500달러로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주목을 받고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나라이다.

 부탄은 진보적인 통합보호 발전계획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와 전체경제적인 기반의 특징이 될 환경보호를 조율해나가고 있다. 인류의 역사상 최초로 혁명이나 전쟁, 외부의 압력 없이 스스로 왕정을 포기한 유일한 사례이다. 공장이나 오염 시설이 없어 온 나라가 청정지역인 부탄은 지구상 마지막 남은 샹그릴라로 불린다. 도축된 고기와 필요한 것은 수입해 쓴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고수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전통과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국민행복지수 GNH를 중심에 놓은 국가정책 때문이다. 1972년, 열일곱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어린 왕이 대관식에서 선언했다.

“국민총생산이 아닌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중심에 놓고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그 선언은 이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실험이 되었다. 행복을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의 보존이 필수라 여겨 옆 나라 인도가 나무를 팔라고 애원해도 팔지 않는 나라.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 역시 행복의 필수조건이기에 공공장소에서의 전통 복장 착용을 의무화하고, 모든 건축물을 전통에 기반해 짓도록 규제하는 나라.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경제 성장 못지않게 영적인 진보와 성장이 중요하다고 믿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진보적인 철학과 정책을 지닌 나라가 바로 부탄이다. 지구상 유일한 금연 국가로 담배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어 있어 담배를 가지고 가면 벌금을 문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있다. 일행 중 면세점에서 3만원어치 담배를 샀다가 6만원의 벌금을 물었으며 부탄인들의 묘한 시선을 받으며 담배를 물어야만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2. 부탄의 역사

 부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천년 경으로 추정되며 불교는 전통적으로 구루(Guru:위대한 스승이라는 뜻) 린포체(Rinpoche)가 8C에 최초로 방문하면서 전해주었다. 지금의 탁상사원(부탄의 상징적인 사원)이 있는 산의 동굴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구루 린포체는 부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두 번째의 부처로 여겨진다. 16세기 이전에는 수 많은 부족들과 호족들이 싸우거나 티벳과 대항하여 부탄 전역에 걸친 여러 계곡을 지배하였다. 이런 상황은 티벳불교의 승려 나왕 남걀의 도착으로 크게 변하게 된다. 그는 여러 지역을 돌며 가르침을 주었고 곧이어 샵드룽 린포체라는 칭호를 내세워 부탄의 종교적 지배자의 자리에 올라 통일된 국가로 변모시켜 ‘용의 나라’라고 불렀다. 그의 정치체계는 20C 초까지 유지되었으나 그가 죽자 부탄은 국내의 갈등과 정치적 암투가 계속되다가 우계왕축이 1907년 부탄의 지도자로 선출되어 첫 왕이 되었다. 세 번째 왕인 지그메 도르제 왕축은 그가 최초로 착수했던 개발 계획 때문에 현대 부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현재는 입헌군주제로 바꾼 5대 젊은 국왕이 다스리고 있다.

 중국이 티벳을 침략한 이후 부탄의 완전 쇄국정책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되자 1971년 UN에 가입하였다. 현재의 국왕인 지그메 싱예는 환경과 부탄의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통제된 발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그의 통치이념은 전통문화 보존과 경제적인 자급자족, 국민의 행복, 환경의 보존이다.

 

3. 부탄의 문화 예술

 부탄의 예술, 무용, 연극, 음악 등은 국교인 불교와 철저히 연관되어 있다. 모든 예술 행위는 종교적인 목적에 따른 것이며, 축제도 국가적 신앙에 대한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부탄에서는 기념품의 디자인은 열악하지만 건축에 필요한 문양그림과 조각 등은 대단하였다. 정해진 전통 건축양식을 따라야하기 때문에 공예미술학교에서 많은 숙련된 기술자들을 배출한다. 어디에서나 통일되고 정성 가득한 문양의 장식을 볼 수 있다. 호텔의 벽에 모두 손그림으로 벽지처럼 연속무늬로 가득 메운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부탄인들은 학교, 관공서, 사원 등 공공장소에서 전통의상을 입어야 한다. 이 작은 나라에서 전통을 지켜나가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자는 ‘고(Goh)’라고 하는데 사원에서는 천(까네)을 둘러야 한다. 신분에 따라 국왕은 노란색, 수상과 장관들은 주황색, 판사는 녹색을 평민들은 흰 색의 까네를 두른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이 천을 반드시 둘러야 한다. 최고의 예를 갖춘 의상이다.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고 구두까지 색을 맞춰 신으면 깔끔하고 격조 있어 보인다. 여성의 옷은 ‘끼라’라고 한다.

 

그림2  여성들은 단정하고 소박한 저고리와 긴 치마를 입는다.

 

 

 

그림3  부탄의 국무총리

 

 

그림4 가이드 린첸다와

 

4. 부탄의 교육과 의료 및 복지 수혜 시스템

 부탄의 교육비는 거의 무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고 60% 이내에 드는 학생이 공립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무료이다. 공립학교에 낙방한 학생들은 사립에 들어가며 학비가 있다. 대학 진학은 고교생의 상위 20%로 학비가 무료이다.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능력껏 진학하여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몇 명은 국비 유학도 보내준다고 한다.

 의료비와 교육비를 국가가 책임을 진다. 국민이 아프면 인근 인도나 태국 등에 보내어 치료해준다. 교육과 의료가 해결되니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노인들은 대가족제도와 정부의 연금제도를 통해 부양된다. 또한 정부 정책은 국민들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우리가 얼마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출산 및 육아 휴가도 이에 포함된다. 불교가 생활 속에 있고 승려학교도 많아 욕심 없이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현재에 만족하는 삶 1위는 당연한 결과일게다.

 

그림5  부탄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젊은 국왕

 

 

 

그림6 격의 없이 국민들과 만나는 국왕

 

 

 

그림7  혼례(평민여인과)

 

 

5. 존경받는 부탄의 국왕

 

 현재 5대 국왕인 지그메 싱예 왕은 28세에 왕위에 올랐다. 부탄의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과 영국에서 학사 석사(공공정책학)를 마쳤다.

 젊은 28세의 청년은 “나는 좋은 국왕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뒤를 이은 왕이 계속 좋은 왕이 될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나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시행하여 국민들에게서 그 권력이 나오도록 하고 싶다.” 라고 외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여 2008년 의회 선거를 치러 입헌군주제로 전환시켰다.

 

  그림8. 국왕을 기다리는 사람들

 

 

 매력적인 국왕은 자신의 결혼식 계획을 의회에서 발표하면서 외국의 국빈을 비롯 왕실의 사람들조차 초대하지 않았고 장관들에게도 부인을 참석시키지 않도록 하면서 조촐하게 평민 신부를 맞아 소박한 결혼식을 치르고 왕궁 근처에 작은 집에 살면서 자전거로 통근한다고 한다. 그의 부친인 4대 국왕은 왕궁을 국민들에게 환원하고 재산도 나눠 주었다고 하니 특별한 왕실이다. 이런 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사랑도 지극하며 공항을 시작으로 가는 곳마다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어 여행객도 국왕과 늘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운 좋게 여행 마지막 날 국왕을 만나게 되었다. 수도도 아닌 파로의 작은 사원에서 국왕의 행렬을 마주하였다. 두 명의 나팔수의 나팔 소리가 온 동네에 퍼지는 듯 하더니 노란 띠를 두른 젊고 잘 생긴 국왕이 몇 명의 조촐한 수행원과 함께 나타났다. 국왕에 대해 존경심과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던 차에 국왕을 만나게 되어 일행과 함께 흥분과 기쁨을 맞보았다.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카메라를 손에 쥐지도 못하게 하였다.

 

6. 부탄 여행은..

 인도인 외에는 개인여행이 금지되어 있고 부탄의 현지여행사에서 진행하는 여행스케줄로써 가이드를 동해해야만 가능하다. 철저히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관광객을 위한 음식은 레스토랑 간에 비슷비슷한 6~8가지 반찬이 반복되어 나온다. 기본적인 채소 볶음과 수프나 국 종류에 생선이나 고기 등으로 구성되는데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는지 종류가 별로 없고 현지 음식보다 조금 순하게 만들어 외국인용으로 제공한다. 유기농 음식으로 식당마다 약간씩 음식 솜씨가 달라 그럭저럭 괜찮은 곳도 있긴 하지만 먹는 즐거움은 잠시 미뤄두는 게 좋다. 부탄에서 한국어 가이드는 5명 남짓이며, 인도에서 한국어가이드를 데려온다.

 부탄 여행에 하루에 250달러(비수기 200달러)인데 이 중에는 50~60% 정도는 국가에 내는 환경보호 부담금이며 나머지는 숙박비, 교통비, 입장권, 생수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2017년 여름 6월-8월까지는 한국 부탄 30주년 수교기념으로 체류비와 숙박비, 항공료 등을 한국인에게 할인해주는 관계로 가격이 좀 저렴했다. 이 기간은 부탄의 몬순시기로 다른 나라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걱정을 많이 했으나 방문한 7월 말에 한 차례씩 비가 쏟아져 시원하였고 여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마처럼 비가 억수로 많이 오는 기간도 있다고 하니 여름 여행은 썩 권할만한 기간은 아니다.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한 소설가는 ‘풉제카’라는 지역에서 글을 쓰기 위해 일 개월 정도 체류할 예정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기에 체류비가 6천 달러가 되느냐고 했더니 15일까지만 정해진 비용을 낸다고 하니 그나마 합리적인 계산이다. 많은 돈이 들지만 꼭 올 사람만 오라는 것.

 

7. 부탄의 여행지

 

그림9 공항에서 바라 본 파로의 종

 

 

그림10  미래가 궁금한가이드 린첸다와

 

 

 ● 파로(공항)

 방콕에서 갈아타고 세 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니 파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나갈 생각을 안했다. 공항은 조촐하였으나 건축물이 특색 있고 풍경이 많이 달랐다. 우리를 기다리는 여행사 사장이자 가이드인 젊은 청년(24세)을 만나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의 이름은 린첸다와였고, 보석이라는 의미를 지녔는데 후에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정말 부탄의 보석이었다. 그 나이에 한국유학(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국비장학생으로 마친 재원으로 애국심도 두텁고 불교에 지식과 사색의 깊이가 대단하여 불자(佛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경험한 삶의 여정이 풍부하고 드라마틱하였다. 여행사를 하면서 현재는 한국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 부탄에 한국 문화원을 열어 한국과 부탄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하고 싶다고 하였다. 기대가 되는 젊은이였다. 한국어로 연기(緣起)여행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인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름으로 여행 내내 인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최선을 다하였고 성숙함이 매우 돋보였다. 청년이지만 존경심마저 드는 사람이었다. 부탄 여행의 추억은 가이드인 그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 팀푸-부탄의 수도

  

그림11  부탄의 심장 타쉬쵸드종-화단에 장미가 만발함

 

 

그림12  타쉬쵸드종 안뜰

 

 

공항이 있는 파로에서 부탄의 수도 팀푸로 짧게 이동하였다. 현재 행정 수도이며 최고의 행정기관과 불교의 총본산이 함께 하는 타쉬쵸드종이 있다. 타쉬쵸드종은 ‘영광스런 종교의 요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국왕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종(Dzong)은 요새(성)이며 행정부, 사법부와 불교 사원이 복합된 곳으로 부탄만의 독특한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건축물 옆의 넓은 화단에 거뭇거뭇한 거름 풍부해보이는 흙에 장미가 가득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최고의 행정기관으로서의 권위와 화려함, 그리고 불교의 위상을 대변하는 장엄함을 갖추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소나기가 마구 쏟아졌다. 높은 마루에 걸터앉아 비오는 뜰을 바라보며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여유를 부리며 빗소리를 감상하였다. 이런 소나기를 수시로 맞이하면서 여름의 부탄을 여행하였다.

 

 

그림13  팀푸 시내의 광장

 

 팀푸시내의 풍경은 은근히 품격있고 아름다웠다. 건물들 간의 색의 조화로움과 전통양식의 섬세하고 묵직한 격조, 도시를 감싸는 높은 산자락 뒤로 구름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신비로움이 있다. 강렬한 칸나가 광장을 붉게 물들이고 그런 중앙 광장에서는 젊은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눈에 드는 기념품은 없지만 우리와 생김새가 거의 비슷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도심을 산책하고 풍경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부탄에서 본 식물도 무궁화를 비롯한 80~90%가 낯익었다. 놀라운 대목이다. 우리나라보다 무궁화를 더 많이 보았다. 해바라기, 채송화, 봉숭아, 코스모스, 과꽃, 아주까리, 부용화, 수국, 나팔꽃, 물봉선, 동백꽃, 칸나 등등.

얼굴의 분위기가 우리나라 사람과 닮아있어서 섞어놓으면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았다.  

 

 

그림14  팀푸 중심가의 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

 

 

그림15   5대 국왕이 결혼식을 올린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

 

 

● 푸나카

 팀부로 수도를 옮기기 전 삼백 년 동안(1637-1907)의 수도로서 부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Dzong)인 푸나카 종이 있는 곳이다. 현재의 5대 국왕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해발 1300m에 위치하여 겨울수도로 알려진 곳이다. 겨울이 되면 불교본부가 옮겨온다고 한다. 푸나카는 강줄기를 끼고 있어 여러모로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부탄에서 가장 존경받는 파드마삼바바는 푸나카종 건설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림16  푸나카 언덕 마을

 

그는 본인이 죽은 뒤 나왕 남걀(삽드룽)이라는 사람이 부탄에 올 거라고(환생) 예언했다. 이는 티벳에서 온 승려로, 부탄의 모든 지역을 통합해 부탄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다.

훗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면서부터는 삽드룽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삽드룽은 1637년 이곳 푸나카로와 아버지강(포추)과 어머니강(모추)이 만나는 지점에 종(dzong)을 세우라고 명령한 뒤 건축가의 꿈속에 들어가 파드마삼바바가 머물던 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축설계도면을 그리지도 않은 채 푸나카종을 완성했다고 한다.

 

● 부탄의 상징 탁상사원

 

그림17 부탄의 상징인 탁상사원

 티벳트 밀교(密敎)의 전통을 수호하고 있는 부탄에서 탁상 사원(Taktshang Goemba)은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꼽힌다. 파로 계곡(Paro valley)의 높이 900m의 깎아지른 듯 가파른 벼랑에 자리 잡은 그 드라마틱한 위치가 신성함을 더한다. 탁상 사원은 ‘호랑이의 둥지’를 뜻하며, 히말라야 지역에서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받는 파드마 삼바바(구루 림포체)가 747년에 암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구루 림포체는 이곳의 악귀를 물리친 후 근처 동굴에서 석 달간 명상을 수행했다고 한다. 이후 탁상 사원은 부탄 전역에서 찾아오는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1998년의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던 사원을 2005년에 다시 지었다.

 벼랑 끝에 걸친 듯 서 있는 탁상 사원으로 가는 방법은 걷기와 말타기이다. 15달러를 내고 한 시간 정도 말을 타는데 좁고 가파른 길을 말을 타고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불행히도 낙마체험을 하였다. 그냥 쉬엄쉬엄 걸어 오르는 것이 훨씬 수월한 것을 실수를 하였다. 해발고도 2,600m에서 시작해 3,140m의 완만한 길을 지그재그로 한두 시간 오르다보면 2,940m쯤에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잠시 쉬어간다. 신비로이 구름에 감싸인 탁상사원을 멀리 바라보면서 탄성을 지른다. 사원에서는 일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라마교 사원 내부에는 오색 천과 기둥에 새긴 조각과 문양, 많은 불상, 벽화 등 정신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여 가만히 앉아 마음의 평정을 갖기에는 좀 어려웠다. 암호랑이로 변신한 부인을 타고 히말라야 산을 넘어왔다는 믿기 쉽지 않은 전설적인 고승의 이야기이지만 이곳저곳에서 그가 이룬 깨달음의 흔적과 수행공간(동굴)과 남긴 보물과 유물 등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런 인물을 토대로 불교가 부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한 이야기가 그들의 불교적 정체성과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 되었고 구루 림포체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과 자부심, 열렬한 신심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우 중요한 토대이다.

 

● 풉제카

 천국의 풍경 같다는 생각을 한 이곳은 짧은 부탄여행에서는 생략되는 곳인데 건너뛰기엔 무척 아쉬운 곳이다. 부탄여행 둥 가장 간직하고 싶은 풍경이었고 4-5시간의 트레킹 경험이 무척이나 소중하였다. 이곳까지 가기위해서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산악지형으로 여섯 시간 정도의 구불구불한 아슬아슬한 길을 거쳐야 하는데 우기에는 겁나는 곳이다. 왼쪽으로는 벼랑인데 길이

그림19  풉제카의 초원과 산구름

무너진 모습이 보여서 차라리 눈을 돌려버렸다. 오른쪽에는 바위가 굴러내려 길 앞에 있거나 무너져 토사가 쌓여있음을 볼 수 있다. 소형버스를 타고 가는데 삶과 죽음이 몇 센티 사이에 있음을 보았다. 부탄여행에 가장 어려운 점은 산길을 넘는 먼 길을 다닐 때이다. 산길 곳곳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지만 워낙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나라여서 길을 잘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행운을 빌며 무사히 통과하도록 기도하는 일 외엔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통과하여 도착한 풉제카라는 곳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평원과 산, 그리고 산을 고즈넉이 감싸는 구름, 초원을 물들이는 노란 꽃과 여러 종류의 야생화, 풀을 뜯고 있는 말들. 이런 곳이 존재해있음에 감사했다. 초원과 숲길을 걸어 사원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걸으면서 5시간 동안 보았던 풍경과 순간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최고의 힐링이었다. 일행 중 다섯 명만 네 시간 동안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달콤한 복숭아 와인으로 육체의 노고를 덜어내었다.

 

밤이 되자 장대비가 쏟아져 다시 험난한 길을 돌아갈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방문 앞 긴 회랑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다가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낮에 맛보았던 풍경과 행복했던 경험이 그대로 살아나 다른 풍경이 되었다.

쏟아붓는 비와 뿌연 비안개로 꽉 찬 초원을 더듬어 또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별을 보진 못하였으나 행복감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빗소리를 즐겼다.

 

 

그림20  푸른 풍경에 피워 올린 붉은 꽃 같은 승려

  

 

● 부탄여행을 마치면서

 부탄을 여행하기 전 ‘더불어 행복한’나라에 대한 궁금함과 부러움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자연경관이 아름다웠고 깨끗하고 말끔한 분위기여서 여행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맑은 기운이 풍부하고 미소가 금새 배어나온다. 평화로운 미소는  부탄 사람들의 행복의 표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복을 이어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사람은 홀로 행복할 수는 없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존재한다. 

 

이상적인 완벽한 나라는 없다. 우기에 산악도로의 위험이 적지 않았고, 무상으로 교육을 시켜주고 있지만 문맹률이 꽤 높다는 기사와 함께 의료비 걱정은 하지 않지만 영아 사망률이 제법 높은 수치를 보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국제적인 잣대로 보면 빈국에 속하는 나라이고. 하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이며, 의료와 교육비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이다. 또한 국왕이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으며(훌륭한 정치가 사람들의 행복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된다는 연구조사가 있음) 겸손하고 소박한 젊은 국왕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림21   눈을 맑게 씻어주는 산간마을 풍경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펼쳐진 구름의 신비로운 풍경이 내내 나의 눈을 사로잡았고, 어딜 가나 녹색의 싱그러움이 충만하였다. 산꼭대기의 집들도 구름과 함께 근사한 풍경을 만들었다. 불교라는 종교가 사람들의 욕심을 줄이고 평화로운 삶에 큰 몫을 한다.

 인근 북인도의 ‘라다크’를 비롯해 행복을 잃어가는 사례를 충분히 연구하여 그들의 정책을 만들고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탄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여행 끝날 즈음에 머릿 속에 맴돌았다. 부탄 여행 중 내내 행복했고, 무엇보다 함께 행복한 부탄이 부러웠다. 미래가 궁금해지는 나라이며 초심을 오래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림22   부탄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정경으로 염소 가족에게 정성들여 파인애플을 먹이고 있다.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 되었다.

 

 

 

그림23  8일간 먹은 음식

 

 

 

그림24  팀푸의 순수한 아이들

 

 

 

그림25  무공해의 이 맑은 미소를 잃지 않길..

 

 

 

그림26 내 포토북의 표지모델

 

 

 참고 자료

http://www.civicnews.com/

[네이버 지식백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부탄 개황, 2012. 5., 외교부)

http://blog.naver.com/palacegelato/80027404453

[네이버 지식백과] 부탄 탁상 곰파– 히말라야의 은둔의 왕국을 찾아가는 길 (세계의 걷고 싶은 길)